더 레슬러 (The Wrestler)


당신의 영광의 시절은 언제 였습니까?

더 레슬러

(The Wrestler)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프로 레슬러, 랜디 '더 램' 로빈슨.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 사람들은 열광했었고,

언제나 경기 마지막에는 모두가 그의 승리를 확신하며

한 마음으로 랜디의 마무리 기술, '램 잼!'을 연호했다.
 
 
영원하리라 생각됐던 영광의 시절,

그 속에서 랜디는 최고의 삶을 누렸다.


하지만 악의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짜고 치는' 레슬링은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고

랜디의 영광도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바스라져 간다.


화려했던 시절이 지나간 뒤에 남은 것은 늙고 병들어

진통제와 스테로이드를 포함한 수많은 약에 의지하지 않고는

더 이상 링에 오를 수도 없는 '고깃 덩어리' 신세의 랜디 뿐이었다.


오래된 마니아 외에는 더 이상 누구도 찾지 않는 신세,

집세를 내지 못 해 자기 집에서 맨 몸으로 쫓겨나는 신세,

하나 뿐인 딸에게는 꼴도 보기 싫은 역겨운 존재인 신세,

'살기 위해서' 마트의 파트 타임 점원으로 일하는 신세.


랜디의 현재는 그렇게 참혹했다.



그래서 그는 피를 흘린다.


젊음을 잃어버린 노년의 레슬러는 과거의 영광을

그렇게 자신의 피로 덧칠하며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피를 흘려야만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확인시킬 수 있었고,

레슬링은 여전히 재미난 게임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


랜디가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사람들은 환호했다.




의사는 그에게 심장병이 있음을 알린다.


이제 피를 흘리는 일조차도 할 수 없음을,

그에게 있어선 레슬러로서의 마지막을 고하는 것이었다.


살기 위해 링을 떠나야만 했던 랜디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계속 살아가기 위해 희망을 찾아나간다.



하지만 결국 그는 다시 링 위로 돌아온다.


링 밖의 세상은 자신이 있을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자신이 자신으로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곳은 링 위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내가 다치는 곳은 밖의 세상이야. 세상은 나에게 관심이 없어.

.....저 소리 들려? 저기가 바로 내 세상이야"



그렇게 그는 죽음을 담보로 세상을 향해 '램 잼!'을 날린다.



단언컨데, 이 영화는 철저하게 미키 루크에 의한 것이다.


미키 루크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처절하게 삶의 진정성을

스크린 속에 담아내지 못 했을 것이다.


모든 부분에서 미키 루크 자신의 삶과 겹쳐지는

이 영화는 미키 루크에게 있어선 더 이상 영화가 아니었을 것이다.


80년대, 떠오르는 섹스 심벌로 헐리우드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미키 루크.

그의 반항적인 미소는 수많은 여인네들의 마음을 녹였었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삶을 확신할 수 없었던 그는

스탭 폭행, 여배우와의 스캔들 등 수많은 구설수를 만들어내다가

결국 진정 남자의 세계라 생각했던 프로 복서의 길에 들어선다.


힘겨운 프로 복서의 길을 걸으며 그는 철저하게 망가져 갔다.


광대뼈 함몰과 코 뼈 골절, 그리고 반복된 성형 수술로

그의 아름다웠던 얼굴은 철저하게 망가졌고,

배우 시절 쌓은 재산도 체육관 운영과 수술 비용 등으로 모두 탕진하고 만다.


설상가상 사랑하는 아내와 친구들마저도 떠나버리고,

암 투병 중이던 동생의 임종도 비행기 표 값이 없어서 지키지 못 한다.


영광의 시절을 잃어버린 채 처참한 지옥의 외길을 걸어가던

그의 곁에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애완견 몇 마리가 전부였다.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던 미키 루크에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특별했던 사람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되는 순간 그 사람은 수치심을 느낀다"


이 영화가 진정성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지난 날 미키 루크 삶의 궤적을 쫓으며 그에게 성찰을 종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 미키 루크가 굵은 눈물 방울을 흘릴 때

우리도 가슴 속으로 삶의 밑바닥에서 허우적 댔던 지난 날의 스타를

추억하며 눈물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결국 레슬러의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라는 사각 링에서 우리도 하루하루 전투적으로 살아간다.


좋아서 하는 일이든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든

우리는 살기 위해 매일 아침 집을 나서야만 한다.


그렇게 우리도 세상이라는 틀에서 피를 흘려야만 하고

우리가 피를 흘릴 수록 세상의 경제란 것은 튼튼해지고

내 가족은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세지는 단순하고 확고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삶은 지속된다는 것.


사람이기에,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에.



젊은 날의 미키 루크.

그에게 있어선 아마도 이 때가 영광의 시절이었을 것이다.

by 아구리 | 2009/03/07 19:40 | Entertainment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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